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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저자는 얘기한다. 한쪽의 인구들에게서 매일 700만 톤의 음식물쓰레기가 버려지는데, 어째서 반대쪽 인구는 5초에 1명씩 굶어가는지. 

 

이런 참상에 원인에 유엔은 기아를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분류하고 있다. ‘경제적 기아’란 과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한 기아를 의미한다. 

 

주로 가뭄과 태풍,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나 전쟁을 의미한다.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뜻한다. 생산력의 저조, 정부의 부정부패, 극도의 빈곤, 질병의 만연 등으로 인한 기아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인재(人災) 이다. 정치적 무능과 부패 같은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인재의 근원을 찾기 위해 자본주의나 국가주의의 이면을 들춰낸다. 

 

자본주의에 의해 유린되는 어린 아이들, 국가주의의 하찮은 이념 덕분에 묵인되는 살인적 기아를 작가는 언급하고 절망한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사람은 절대 계층을 무마할 수 없으며, 계층간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소말리아나 칠레에서 굶주리는 저 아이들은 과연 자력으로 빈곤과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절대 안된다. 

 

점점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양극화 현상이 강해지는 가운데, 부를 가지고 권력을 가진 부모의 자식은 부모의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기에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것이다. 

 

부모의 무지를 물려받고 부모의 고달픔 잇는 족쇄가 끼인 어린 아이들은 대개 구걸을 택하게 된다. 

그렇기에 전 세계에 기아가 끊일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럼 자본주의 대신 사회주의를 쓰면 되는 것이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추구하는 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모든 사람이 살기를 바란다.  그게 바로 선이다.  

 

그렇기에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을 최고의 선이라고 하며 이것은 정치학에서 다뤄진다. 

정치학은 학문연구, 교육, 경제, 규칙, 제정 등 다른 모든 학문들의 목적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학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치학은 여러 사람의 행복을 실현함에 목적을 두고있다. 

따라서 선은 정치학에 속한다.'

그렇기에 개인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는 자본주의가 선호되는 이유이다

 

이로써 이 세상의 기아를 절멸시키기 위해선 사회주의나 자본주의가 아닌 보다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결론은 이 세상의 기아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하울의라일락

 

-고등학생의 개인적인 글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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